3D 마우스 개발하다 ‘제로 토크’ 번뜩… 저스틴 로즈 우승하며 인기[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최우열의 네버 업-네버 인 - ‘제로 토크 퍼터’ 열풍
퍼터의 샤프트 중심축과
헤드 무게중심 일치시켜
헤드의 토크 없애는 기술
안병훈·김아림·노예림 등
KPGA·LPGA 우승 행진
“골프란 아주 작은 공을 몹시도 부적합하게 설계된 장비로 더없이 작은 구멍에 쳐서 넣는 경기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총리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윈스턴 처칠(1874∼1965)의 말이다. 누구보다 자존심 세고 지기 싫어했던 성격의 처칠이 골프 때문에 얼마나 혼자 속앓이했을지 짐작이 간다.
600년이 넘는 골프의 역사에서 골프 장비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처칠의 말대로 유독 퍼터는 이렇다 할 만한 혁신이 많지 않았다. 초창기의 퍼터는 우드나 아이언 클럽과 비슷한 모양에 페이스가 수직에 가깝게 서 있는 그저 로프트만 낮은 클럽일 뿐이었다. 퍼터 설계와 제작에서 가장 큰 혁신은 196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타났다. 퍼팅이 골칫거리였던 제너럴일렉트릭(GE)의 엔지니어 카스텐 솔하임이 개발한 앤서 퍼터가 그 주인공이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솔하임은 퍼터의 헤드 가운데 부분을 파내 중량을 줄이고 헤드 양 끝에 무게를 추가하는 간단한 변화만으로 관성모먼트(moment of inertia)가 커져 퍼팅이 훨씬 안정적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단조로 제작되던 다른 퍼터와 달리 주조로 대량 생산돼 가격까지 저렴했던 앤서 퍼터는 빠르게 입소문이 나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1984년 특허의 시효가 만료되고 스카티 캐머런을 비롯한 많은 퍼터 제작자들이 하나둘씩 앤서 퍼터의 디자인을 베끼기 시작하면서 앤서 퍼터는 오늘날 거의 모든 퍼터의 원형이 되었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퍼터의 기술 혁신이 다시 활발해진 것은 이른바 ‘제로 토크(zero torque)’ 혁명 덕분이다.
퍼터의 샤프트 중심축과 헤드의 무게중심 위치가 일치하지 않아 퍼터 헤드는 더 무거운 쪽으로 기울게 된다. 이 때문에 퍼팅할 때 퍼터 헤드에 토크(비틀림)가 발생한다. 그 결과 퍼팅 중에 퍼터 페이스가 열렸다가 닫히게 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때 만약 손목과 팔의 힘으로 퍼터 헤드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면 임팩트 순간 퍼터 페이스가 어드레스 때 각도로 돌아오지 못해 퍼팅이 빗나가게 된다.
산업 디자이너인 루이스 페드라자는 나사(미 항공우주국)의 화성 탐사 차량을 제어하는 3D 컴퓨터 마우스 개발 작업 도중 불현듯 퍼터의 샤프트 중심축과 헤드 무게중심을 일치시켜 퍼터 헤드의 토크를 없애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곧바로 퍼터 설계에 들어간 페드라자는 2009년 드디어 골프 역사상 최초의 제로 토크 퍼터인 액시스 이글 퍼터 개발에 성공했다.
제로 토크 퍼터란 말 그대로 퍼팅 스트로크 중 토크가 전혀 발생하지 않아 퍼터 헤드가 열리고 닫히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퍼터를 말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기존 퍼터와 너무나 다른 독특한 모양 때문에 제로 토크 퍼터는 골퍼들의 외면을 받았다. 제로 토크 퍼터가 골퍼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2019년 영국의 저스틴 로즈가 이 퍼터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다.
최근에는 또 다른 방식의 제로 토크 퍼터인 L.A.B. 골프의 퍼터를 사용한 골퍼들이 연거푸 우승을 차지하면서 투어에 제로 토크 퍼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만 베네수엘라의 조나탄 베가스, 미국의 루카스 글로버와 그레이슨 머리, 콜롬비아의 카밀로 비예가스가 제로 토크 퍼터를 사용해 PGA투어에서 우승했다. 한국 선수 중에는 안병훈이 한국프로골프(KPGA)투어와 DP월드투어가 공동 주관한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9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제로 토크 퍼터의 우승은 올해도 계속된다. 한국의 김아림이 LPGA 시즌 개막전에서 4년 만에 우승하자마자 뒤이어 열린 파운더스컵에서 미국 교포 노예림이 7년 만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갈수록 높아지는 인기에 여러 용품회사가 잇달아 신제품을 내놓고 있어 앞으로 제로 토크 퍼터 시장의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스포츠심리학 박사, 국민대 스포츠산업대학원 교수